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놓고 정치적 이념 논쟁이 계속되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이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을 지낸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에너지 정책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될 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에 정치는 배제하고, 세계적 흐름을 반영한 일관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전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사진=정인혁 기자)
유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달성 등 목표 설정만큼 중요한 건 실천"이라면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고 각 부처, 기업, 시민 등 국가 전체가 목표 달성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어느 한 정책에 치우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당분간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재생에너지라는 ‘정해진 미래’가 있지만, 현재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당분간 원전 활용도 필요하다”며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3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소재 숙명여대 수련교수회관에서 진행된 유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Q. 정치권에서 에너지 정책 논쟁이 지속된 가운데 4·10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범야권의 에너지 정책을 평가한다면?
그동안 추진해온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정책들이 많다. 다시 말해, 화석연료 중심 정책에서 완전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의 전환을 매우 강하게 드라이브 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로 전환이 굉장히 늦은 편이다. 야권이 탄소중립 목표를 재차 명확히 하고, 기후에너지부 같은 통합 부처를 만든다는 것은 소모적 논쟁을 최소화하면서 효과적으로 에너지전환 정책을 펼치려는 것이다.
Q. 일각에서는 한쪽에 치우친 정책보다는 공존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선?
현재 우리나라 상황상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달성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단기적으로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공존을 선택해서 화석연료에 적극 대처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다만 사용후 핵원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등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상황인 만큼 공존을 위해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Q. 22대 국회 시작을 앞두고 고준위 특별법(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특별법) 처리가 빠르게 진행되길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원전과의 공존은 사용 후 원료 등 폐기물에 대한 처리장 문제가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얘기다. 처리장을 만드는 데만 몇 십년 걸리기 때문에 빠르게 법안 처리를 논의해야 한다.
Q. 11차 전력기본수급계획이 당초 계획보다 발표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11차에 현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반영되겠지만, 지난 정부의 10차 계획과 변동이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치적 이념으로 논쟁이 번지면서 계획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또 총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가 있어 만에 하나 생길 의견대립을 피하려다 보니 준비가 늦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전기본을 2년마다 수립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 편이다. 15년을 내다보고 결정하는 에너지 정책인데, 이게 2년마다 바뀐다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 계획이 많으면 차질도 많다. 15년 장기계획이 2년마다 수정되면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 이렇게 2년마다 수립해야 하는 전기본의 특성상 국가 에너지 정책에 장기적 관점은 전혀 반영되지 못할 것이다.
Q. 전기본 초안이 만들어져도 국회 보고 절차 등을 거쳐야 최종 확정되는 구조다. 야당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보고를 미루며 초안이 수정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예상이 어려운 부분이지만, 과거 경험을 보면 22대 야당의 이의 제기가 아주 강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야당은 재생에너지를 적극 보급하고 원전 활용은 최대한 줄이자는 게 입장이다 보니 국회 보고를 늦추는 등 지연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다.
Q. 22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이번 총선에서 가장 특이했던 건 야당이나 여당이 각각 기후, 에너지 정책을 별도로 발표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지난 2008년부터 저탄소 녹색 성장이라는 훌륭한 비전을 제시하고 배출권거래제 등 제도를 도입했음에도 이를 적극 이행하고 성과를 내는 데는 부족했다. 이제는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것 뿐 아니라 계획이 적극로 이행될 수 있도록 국회에 예산, 조직 등 감시 기능이 생기길 기대한다.
Q.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등 전력이 대규모로 필요한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반도체 클러스터의 경우 상당한 규모의 전력이 필요하다. 근데 이를 공급할 송전망 등 인프라 구축이 미진한 상황이다. 기업들은 RE100 달성을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보급을 원할텐데 초기 전력은 원전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은 RE100 달성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작은 전자제품 하나를 만들 때도 기업간 RE100 달성 여부를 판단하고, 최종 소비자들 역시 RE100 여부를 확인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RE100 등 국가 에너지 정책은 더 이상 환경정책이 아닌 산업정책으로 봐야 한다. RE100은 무역에서 비교우위 역할을 할 만큼 중요한 국가 경쟁력이다.
Q. 산업계가 현재 태양광보다는 해상풍력에 조금 더 시선이 쏠려 있는 것 같다.
해상풍력의 경우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그간 재생에너지는 간헐성 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해상풍력의 경우는 규모가 우선 상당하고 해상 10m, 15m 이상 높이에서 바람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어 문제가 해결된다. 우리 나라의 지리, 지형적 이점도 활용할 수 있어 준비만 잘되면 훌륭한 에너지 보급원이 될 것이다.
Q. 원전이든 재생에너지든 필요한 곳에 전력을 공급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처럼 보이는데...
송전망 추가 건설은 사실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주민 수용성 문제도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지형적 문제도 크다. 산과 같은 굴곡 많은 지형적 구조 탓에 송전망 구축에 어려움이 있다. 한전의 재정 안정화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인프라 구축을 늦출수록 문제는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기 때문에 빠르게 조치에 나서야 한다.
Q. 올해 우리나라의 전기·가스요금이 계속 동결 기조다. 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 당국의 개입으로 요금이 시장 원리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에너지 요금도 시장경제 원리가 더 많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요금 인상이라는 말보단 정상화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이다. 인상이라는 표현 때문에 반발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껴지는 거다. 한동안 안 올리다가 한 번에 확 요금을 올리려는 방법도 문제다. 소폭 점진적으로 꾸준히 올렸으면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이제는 기계적으로 가격이 책정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준비돼야 한다.
Q. 올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에 필요한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많은 곳에서 아직 온실가스 감축,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 등에 관한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한다. 지난 2008~2009년부터 준비하고 설정한 목표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준비가 안 됐다는 건 납득이 안 간다. 이제는 목표 설정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결국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국가 전체가 목표 달성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승직 숙명여대 교수(전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 (사진=정인혁 기자)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연세대학교, UC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각각 경제학, 환경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환경부 국가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장을 지냈으며 현재 UN 기후변화협약(UNFCCC) 파리협정 준수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배출권 할당위원회 민간위원 등으로 재직 중이다.